이런 책을 읽었다

만약은 없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매순간 '선택'에 직면하고, 수없이 많은 '만약'이 가슴을 옥죈다."
 
"하나의 생을 떠나보낸 후, 돌아온 자리에서 마치 독백하듯 써내려간 글들이다. 후회했을 뿐 아무것도 돌이키지 못했을지라도, 죽음과 삶. 이 경계를 다시 복기하는 것으로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했노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시체는 두렵지 않지만, 죄스러움은 한없이 두려웠다.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는 잘 못했다고, 인간이 인간을 다룸에  미안하다고 덧붙여 매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시체가 하얀 포를 뒤집어 쓰고 영안실로 나갈 시간이 되어 지나가던 간호사들이 나를 두드려 깨우고 시체를 정리할 때까지, 내가 방금 한 일에 대해서 생각하며 이제 막 죽어버린 그 표정의 무게를 내 어깨 위에 얹었다. 나는 이 의식을 치러야만 그 죽음이 이해되었고, 조금은 죄책감을 덜어내고 타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 '아이스버킷 챌린지'라는 것이 유행이었다. 루게릭 환자를 돕는다는 취지 아래 사람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카메라 렌즈를 자신에게 맞춰놓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음물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들고 깔깔대며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부었다..... 루게릭은 전신의 모든 근육이 마르고 비틀리는 병이다.... 텔레비전에서 얼음물을 뒤집어쓴 사람들은 차가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깔깔대며 밝게 웃었고 그 다음 참가자가 될 친구들의 이름을 약 올리듯 불러댔다. 그곳에서 슬픔이란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고, 먼 곳에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나 겪는 일처럼 보였다. 나는 리모컨을 들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텔레비전을 껏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최근 응급실에 간 적은 몇년전 아이가 새벽에 경기를 일으켰을 때였다. 혹시라도 뇌에 이상이 있는건 아닐까, 재발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부리나케 달려 갔지만 정작 의료진들의 조치는 간단했고 답변 또한 건조했다. 도착후 한 삼십분 지나보니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밀려들어오는 응급환자들 수와 증상 경중을 따져보니 소아 경기 같은건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인 것이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도착한 사람,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서 들어온 사람, 순서를 기다리는데 지쳐 고성을 지르는 사람, 의료진의 사망선고에 터지는 울음과 흐느낌, 과음하고 어디서 낙상했는지 상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에 행패를 부리는 사람 등등. 이런 상황에서 맨정신에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기에서 의료진까지 감정적이 된다거나 구구절절 모든 환자를 세심껏 챙겨준다면 그나마도 굴러갈 수 없는 시스템이 될것 같았다. 

 책은 두개의 챕터로 이뤄져있다. '만약은 없다는 말 : 죽음에 관하여' 그리고 '알지 못하는 세계 : 삶에 관하여'.
첫 챕터의 소재는 응급상황과 죽음, 그에 대한 저자의 번뇌와 고민을 다룬다.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몰입이 되고 엄숙해진다. 반면 두번째 챕터는 응급실이 주는 무게에서 벗어나 일상 의료업무중 단상을 다루는 내용이라 상대적으로 가벼워 술술 읽힌다. 삶과 죽음이란 먹구름 낀 산정상에서 평지로 향하는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랄까.

 경제경영, 창업, 재테크 분야에서 호흡이 짧고 치고 빠지는 식의 책들이 범람할 때가 있다. 직업에 대한 만족이 낮거나 성찰이 부족해지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사회구성원들이 많아지고 추구하는 가치가 경제적인 이유로 획일화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회 구성원간 신뢰도 낮고 금전적 성공만이 인생의 목표가 되버린 시대에 직업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며 나오는 고민과 고백이 깊이가 있다. 이 책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의료시스템 개선, 의료보험수가, 의료민영화와 같이 의사들이 제기하는 주요 이슈들이 있다. 한계와 부작용이 분명하니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들은 사회 지도층, 고소득층 이란 편견과 질시때문인지 그들의 주장을 흘려듣거나 이권추구, 업종가르기 등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응급실 의료진의 노동강도는 살인적이고 환자들의 생사 가운데서 느끼는 심리적 중압감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응급의료시설이나 의료진이 당시보다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삶과 죽음을 떠올리며 적은 글들은 그대로겠지만 부족한 의료진, 시설 때문에 어쩔수 없이 내릴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선택과 판단으로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이 더 있지 않았을까. 무력감과 허망함은 덜하지 않았을까. 홀로 바위를 지게 만든 것 같아 안스러운 마음뿐이다.

 아래 저자가 사회에 던지는 돌직구가 더이상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인 중증 외상환자는 한해 12만명이다. 그중 25퍼센트 가량인 3만명이 실제 죽는다. 사망환자 3만명중에서 1만명은 의료기관에서 평가했을 때 대응이 빨랐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1년에 1만명이면 하루에 27명꼴이다. 외상 시스템의 미비로 한시간에 한명이 넘게 죽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일을 낱낱이 알고 있을 텐데, 왜 고쳐지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닥칠 위험이 거의 없다시피한 광우병에는 분노하고 두려워하지만 귀갓길에 마주한 교통사고 때문에 병원에 갔는데 수술이 지연되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는 왜 분노하지 않을까? " 


'이런 책을 읽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O2O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  (0) 2016.10.08
백만 방문자와 소통하는 페이스북 마케팅  (0) 2016.10.02
피싱의 경제학  (0) 2016.09.23
리딩 - Leading  (0) 2016.09.19
임백준의 대살개문  (0) 2016.09.16
,
  [ 1 ]  

최근 댓글

최근 트랙백

알림

이 블로그는 구글에서 제공한 크롬에 최적화 되어있고, 네이버에서 제공한 나눔글꼴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태그

링크

카운터

Today :
Yesterday :
Tot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