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관심사

청춘의 자기애

오포세대도 나름 할말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절에도 공부가 쉬웠거나 연애가 저절로 됐다거나 집이 평균수입에 비해 쌌다거나 하던 시절은 없었다. 항상 부딪혀서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고 뒷전에서 팔짱끼고 궁시렁 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준비도 준비지만 용기와 실행력은 준비한다고 얻어지는건 아닌것 같다.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됐어요. 기다려 주세요.”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말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 취업 준비를 해왔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나이 든 부모는 자식이 빨리 아무데더라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론 투자한 게 있으니 좋은 곳에 취업하기를 원한다. 그러다 혹시 정신적인 문제는 없는지 상담을 요청하곤 한다. 만나보면 우울해 하지도 않고, 잘해야겠다는 긴장과 불안이 지나친 상태도 아니다. 내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면 “준비가 덜됐다”는 식으로 답한다. 취업하지 못한 이유를 마치 준비라도 해 온 것처럼 술술 말한다.

이런 젊은이들을 최근 자주 본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제발 가만히 두라고 한다. 현실이 팍팍해 독립적 성인이 되는 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준비만 하고 비평만 할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라고 할 뿐이다. 이런 젊은이가 중산층 출신인 경우가 많다.

이성관계에서도 비슷하다. “이건 썸을 타는 건가요?”라며 고민은 하지만 실제 이성관계의 특별한 경험은 의외로 적다. 상대의 좋은 점보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점, 잘 되지 않았을 때 벌어질 문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고 그것만 걱정한다. 정작 실제 이성을 만나는 것은 꺼린다.


<일러스트 강일구>


젊은이들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지지 않는 것’이다. 실패와 좌절의 아픔을 원천봉쇄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식으로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1960년대 정신분석가 엘킨트는 청소년기 자기애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능감,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의 독특한 존재감, 절대 파괴되거나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청소년기의 이런 특징은 청년기까지 확장됐다.

지금 젊은이들의 독특한 정신승리는 이런 청소년기 자기애의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전능하고, 어떤 위기에도 다치지 않으며, 유일무이의 독특한 존재여야 한다고 믿는다. 부모가 그렇게 키운 면도 있다. 아프지 않게, 다치지 않게 좋은 길로만 가게 했고 충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는 많은 것을 가진 청년으로 잘 자라났다. 반듯한 길로만 잘 자란 덕분에 실패할 일이 별로 없었고, 실패에 대한 면역력은 가진 능력에 비해 약하다. 과잉발육한 자기애는 정신적 완벽함이 훼손되는 것을 견딜 수 없다 여긴다. 이럴 때 합리적 대응의 하나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충분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는데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여기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애는 계속 부풀어 올라 현실과 괴리를 감당하기 어려워 종국에는 ‘펑’하고 터질 것이다. 이런 방식의 정신승리는 그래서 위험하다.

자기애는 완벽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번번이 그러지 못한 것을 일깨운다. 그러면서 어른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매번 직면하고 아파만 할 필요는 없다. 건강한 것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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