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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과 정발상: 역발상이 곧 정발상인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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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반대로 뒤집고 돌리고... 생각만 해도 손해나는건 없지 않은가? 생각도 안하려고 ?


식상한 사람은 상식의 틀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다. 상식을 뒤집으면 오히려 식상해진다. 식상한 사람은 상식에 시비를 거는 몰상식한 사람의 발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식의 세계에서는 도저히 통용될 수 없는 원칙이나 생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위해 상식적인 사람들이 면접관으로 임명되면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들이 채용될 수 있을까? 상식의 세계에 시비를 걸고 정상적인 사람의 발상에 의문을 던지는 비정상적인 사람은 상식과 정상만이 옳은 것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을 그야말로 몰상식하고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취급할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통용되는 말을 하지 않거나 그들만의 리그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엉뚱한 발상을 시도하면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뭔가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사람으로 판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을 정복하려는 사람들이 이끌어간다. 한 마디로 정상에 오른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Portable Toaster>

역발상을 시도하는 방법 중에 가장 간단하면서도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법이 있다. ‘~에는 ~가 있다’는 말을 ‘~에는 ~가 없다’는 말로 대체하면 아주 새로운 발상이 시작된다. 예를 들면 ‘선풍기에는 날개가 있다’는 말을 ‘선풍기에는 날개가 없다’는 말로 대체하면 ‘날개 없는 선풍기’가 탄생된다. 선풍기에는 날개가 있다는 가정을 그대로 둔 채 혁신적인 선풍기를 아무리 만들어도 그저 그런 선풍기밖에 나오지 않는다. ‘스테이플러에는 침이 있다’는 말을 ‘스테이플러에는 침이 없다’고 역발상을 시도하면 ‘침이 없는 스테이플러(staple free stapler)’가 탄생된다. ‘음식점에는 메뉴가 있다’는 말을 고집하는 한 모든 음식점에는 메뉴가 있는 음식점 밖에 생각이 안 나지만 ‘음식점에는 메뉴가 없다’고 생각하면 메뉴 없는 음식점이라는 새로운 컨셉의 음식점이 탄생된다. 그 때부터 ‘메뉴 없는 음식점’에 손님이 오면 어떻게 주문할 것인지 새로운 발상이 날개를 달기 시작한다. 이처럼 역발상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정을 없애버리면 그 가정 위에서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구상할 수 있다.



역발상을 시도하는 두 번 째 방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 ‘당연하다’,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면의 원래, 당연, 물론의 세계에 물음표를 던져 시비를 걸어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원래부터 그런 것이 없으며, 당연한 것도 물론 그런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대박 히트 상품이나 전대미문의 새로운 창조는 물음표의 호기심과 궁금함 속에서 느낌표가 탄생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과가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로지 뉴톤만이 당연한 사과의 낙하현상에 대해서 물음표를 던져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마침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우리는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한 뉴톤이 출제한 문제에 답을 찾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처럼 원래, 물론, 당연의 세계에 물음표를 던져 상식이라고 생각한 세계에 몰상식한 발상을 시작, 마침내 감동의 느낌표를 찾는 과정이 역발상이다. ‘관습(慣習)’을 타파하지 않으면 나쁜 ‘습관(習慣)’에 억매여 살게 된다.

                                                 <Squeezophone 360°>


역발상을 시도하는 세 번째 방법은 개념을 뒤집어 보는 것이다. 개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DOG’를 뒤집으면 신을 의미하는 ‘GOD’이 되고 남자를 유혹하여 신에게서 받은 생명을 박탈당한 이브(EVA)를 뒤집으면 구원의 상징, 천국의 문을 의미하는 아베(ABE)가 된다. 삶은 개판이기도 하지만 신의 존재명령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신성한 세계이기도 하고, 마리아의 처녀성을 빼앗은 지옥의 문 이브가 이제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인도하는 아베로 변신한다. 나아가 악을 의미하는 단어 ‘EVIL’를 뒤집으면 삶을 의미하는 ‘‘LIVE’가 된다. 삶을 제대로 살지 않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지옥의 문으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역경을 뒤집으면 경력이 된다. 남다른 경력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 시련과 역경을 경험한 사람만이 남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경력의 소유자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기자가 기사나 사설을 쓴다. 기자를 뒤집으면 자기가 되고, 기사를 뒤집으면 사기가 되며, 사설을 뒤집으면 설사가 된다. 즉 기자가 자신의 쓴 글에 책임을 지지 않고 기사를 쓰면 사기가 될 수 있으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논리정연하게 사설을 쓰지 않으면 설사로 전락할 수 있다.

‘성실(誠實)’하지 않으면 ‘실성(失性)’하고 ‘지금’ 하지 않으면 ‘금지(禁止)’되며, ‘실상(實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상실(喪失)’의 아픔을 겪을 수 있다. 언제나 성실하게 안 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시비를 걸고 금지된 곳에서고 가능성의 세계를 찾아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문이 열리는 법이다. 내 주변의 실상을 주도면밀하게 파악,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길은 열리는 법이다. ‘세상(世上)’을 똑바로 살지 않으면 ‘상세(詳細)’하게 목표를 설정할 수 없으며, ‘사상(思想)’을 똑바로 세우지 않으면 ‘상사(上司)’조차도 되지 못한다. ‘사고(思考)’하지 않으면 ‘고사(枯死)’당하고, ‘등대(燈臺)’를 찾는 노력을 포기하면 ‘대등(對等)’한 입장에서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 남다른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검색에만 열을 올리고 남의 사상 체계에만 매몰되지 말고 방대한 독서와 다양한 체험을 기반으로 깊은 사색의 물을 길어 올리는 사고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사색(思索)을 하지 않으면 얼굴이 사색(死色)이 되고 사고(思考)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고(事故)가 나는 법이다. ‘책상(冊床)’에서 진득하게 공부하는 시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고뇌하는 이슈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책(上策)’은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머리가 아프면 책상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해보자.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책이다. 책도 중요하지만 읽은 책을 소화시키는 산책은 또 다른 사색의 여정이다.

‘작가(作家)’로서의 기질을 보여주지 않으면 ‘가작(佳作)’도 탄생시킬 수 없으며, ‘일생(一生)’을 목숨 걸고 살지 않으면 ‘생일(生日)’조차 맞이할 수 없다. ‘문인(文人)’들의 세계를 파고들지 않으면 ‘인문(人文)’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으며, ‘성숙(成熟)’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숙성(熟成)’되지 않는다. 성장 일변도의 외형적 몸집 불리기 전략보다 내면적 성숙을 위한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화려하지만 겉은 비어 있는 껍데기로 전락할 수 있다. 키 크는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 뭔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도약하고 싶으면 당분간 세상과 단절해야 한다. 세상의 소음과 ‘단절(斷絶)’하지 않으면 인생이 ‘절단(絶斷)’날 수 있으며, ‘성품(性品)’을 곱게 가꾸지 않으면 ‘품성(品性)’마저 망가진다. 성품도 개성이지만 혼자서 외로운 사투를 통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 믿음을 주고받는 인간적 관계에서 피는 꽃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변주(變奏)’하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면 ‘주변(周邊)’에서 영원히 서성거릴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용기(勇氣)’내어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 어디에도 ‘기용(起用)’되지 못한다. 한 분야에서 위업을 달성하려거든 치열하게 고민하되 과감한 실천을 병행해야 한다. ‘수고(手鼓)’하지 않으면 ‘고수(高手)’가 될 수 없으며, ‘체육(體育)’으로 몸을 단련하지 않으면 ‘육체(肉體)’를 잃을 수 있다.

‘교육(敎育)’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미래로 향하는 ‘육교(陸橋)’조차 건설할 수 없으며, ‘굴비’에게도 배우려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비굴(卑屈)’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역발상을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주변의 모든 게 다 스승이고 배움의 원천이다. 역발상을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걸림돌과 디딤돌은 같은 돌이다. 걸림돌을 제거하면 디딤돌도 없어진다. 걸리적거리는 걸림돌도 생각을 바꿔서 다시 보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로 다가온다. 역발상을 시도하는 사람은 일상을 틀에 박힌 방식대로 되풀이하지 않고 작은 일이라도 되새김질을 해본다. 되새김은 각성과 성찰이지만 되풀이는 의식 없는 반복이다. 되새김질은 의미를 재탄생시키지만 되풀이는 의미의 동어반복일 뿐이다. 의미없는 반복은 반전을 일으키지 못한다. 작은 일이라도 진지하게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기회를 엿보는 절치부심과 호시탐탐 끝에 비로소 역전과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되새김 없는 되풀이는 단순한 한풀이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되새김질 없이 되풀이만 반복하면 의미는 실종되고 재미는 도망간다. 되풀이는 되새김을 전제로 반복되어야 한다. 그 때 반복은 이전과 다른, 차이가 있는 반복이다. 차이가 드러나는 반복만이 반전을 일으켜 마침내 전세를 뒤집고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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