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관심사

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가 먼저 변해야...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듣고 "너는 떠들어라 나는 한 귀로 듣고 흘리련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것 보다 더 슬픈 관계는 없을 것 같다.




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많지만 우리나라에 한정하여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만 꼽아보라면 다음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 기승전'공부'이기 때문

상담을 하면서 많은 부모들을 만나는데 자녀의 문제가 아무리 다양해도 결국 부모가 원하는 건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겁니다. 부모의 나이, 학력, 직업 불문하고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습니다. 겉으로는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학교 적응을 잘 했으면 좋겠다. 좋은 친구를 사귀었으면 한다고 포장하지만 결국은 깔때기처럼 공부로 모아집니다. 공부를 꼴찌해도 좋으니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즐겁게 살기마나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직까지 만나보닐 못했습니다. 그런 부모의 자녀는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의 문제가 생기지도 않을테니 앞으로 저를 만날 일이 없을 겁니다.

둘째.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

부모들이 심하게 착각하는 점 중 하나는 자녀는 자신이 세상을 오래 살았고 경험이 더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하면 삶의 지혜에서 나온 조언을 자녀들이 귀담아 들을거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미안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조금만 머리가 굵어져도 어른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행동만 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할 때 아이들이 "네, 잘 알고 있어요" 라고 말한다면 그건 "엄마 아빠나 실천하세요. 말만 그럴싸하게 늘어놓지 말고요."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빨간 불 신호등일 때 길을 건너지 않는지, 식당 종업원을 정중하게 대하는지 등을 유심히 봅니다. 그리고 따라합니다.

예를 들어 책에는 인류의 지혜가 들어있으니 우리 아이가 책을 가까이 했으면 좋겠는데 왜 그리 책을 안 읽으려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한탄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런 불평을 하는 부모 중에 본인이 즐겨 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말로는 인류의 보고라면서 책을 치켜세우면서도 정작 자신은 책을 멀리하는 부모의 행동을 보고 아이들이 책을 읽을리 만무합니다. 비슷한 예로는 부모는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보고는 쓸데없는 것에 관심가지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라는 강압도 있죠.

아이가 어떤 좋은 습관을 들였으면 하고 기대하려면 그보다 먼저 부모 자신이 그런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큰 이유를 들었지만 저는 기저에 더 큰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결과중심주의 인데 이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지 부모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의 사회, 교육 시스템은 반드시 결과를 따지고 평가하는 결과중심주의에 입각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중심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호기심과 탐구 동기의 상실입니다. 호기심과 탐구 동기의 상실은 지속성을 앗아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결과중심주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과에 타격을 줍니다.

결과 중심주의가 우리 교육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건 간단합니다. 비교와 평가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참 잘했네", "지난 번에 비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좋아졌다.", "조금만 더 하면 잘 할 수 있겠다." 등의 말은 모두 결과중심주의에 입각한 말입니다. 최종적으로 잘한 상태라는 것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거든요. 어른들이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결과중심주의 용어로는 '가성비'가 있습니다.

반대로 과정중심주의는 과정 중에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느냐에 초점을 둡니다. "해 보니 어땠어?", "즐거웠니?", "재미있었니?" 와 같은 말들이 대표적이죠. 평소에 자녀와 상호작용할 때 이런 말들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아마 거의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부모가 공감하지만 결과중심주의 시스템 하에서 과정의 의미를 추가로 부여하는 것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결과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잘한다", "못한다"는 말 자체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 해 보시면 "잘한다", "못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자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금방 알게 되실겁니다.

주제에서 좀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결과중심주의 시스템에서 자란 부모와 대화를 하게 되면 결국 내재적인 동기와 호기심이 말살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정확하게는 불길함을 느껴서)입니다. 심리평가를 할 때마다 문장완성검사에서 "이번 방학 때 가장하고 싶은 것은 좀 더 노는 것".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친구와 노는 것"이라고 쓰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녀와 진정한 대화를 하고 싶은 부모는
1) 잘했다, 못했다와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결과중심주의와 적극적으로 싸우고
2) 공부를 제외한 다른 주제에 스스로 관심을 갖고
3) 스스로 이를 체화하고 습관화 해야 합니다.

이 세가지가 충족되지 않는 부모는 미안하지만 자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를 충족하는 부모의 수가 너무나 적습니다. 더 암울한 건 상황이 나아질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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