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관심사

한국에 워런 버핏이 없는 이유


워런 버핏은 추종자들을 늘 감동시킨다. 28억4000만달러 가치의 회사 주식을 기부한다는 며칠 전 발표만 해도 그렇다. 한국 돈으로 무려 3조2000억원이다. 기부 총액이 벌써 255억달러라니 3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감격할 만도 하다. 그리고 불만스럽다. 우리에겐 왜 이런 기업인이 없는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버핏이 한국인이라면 어땠을까. 한국의 기업 풍토가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았을까. 하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해보자. 버핏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기부는커녕 기업을 키우는 것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는 젊은이들로 붐비는 사탕 가게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잘나가던 제품이 TV에 간접광고 형태로 소개되더니 날개를 달았다. 버핏이 만들어 파는 사탕이다. 생각해보라. 세계 5위의 대기업이 아이들 과자나 만들어 팔면서 골목상권을 죽인다. 수입상이 하는 가게이니 굳이 버핏을 거론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직원들에게 아침을 제공하는 사내 카페마저 문을 닫게 한 나라다.

버핏의 지주회사 벅셔해서웨이는 50개가 넘는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두고 있다. 금융회사도 있고 제조업체도 있지만 아이스크림이나 팝콘을 팔아 코 묻은 돈을 거둬들이는 가게도 수두룩하다. 주스 가게와 햄버거, 양념을 파는 가게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미국에선 비난거리가 아니다.

며칠 전 로케트건전지의 사옥이 경매를 통해 매각됐다. 한때 시장 점유율 1위였던 회사다. 정부는 건전지시장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묶어 대기업의 진입을 막아줬지만 중소기업이 한눈을 판 사이 시장이 외국 기업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로케트건전지가 힘들어지자 브랜드를 외국 기업에 매각했는데 그 상대가 듀라셀이다. 벅셔해서웨이의 자회사다. 국내 대기업은 안 되고, 버핏 회사는 되는 곳이 한국이다.

하긴 한국에서는 벅셔해서웨이와 같은 보험회사가 비금융자회사를 두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 미국은 보험지주회사가 어떤 업종의 자회사를 두고 어떤 업무를 하든 개의치 않는다. 보험회사의 비용 없는 레버리지를 활용해 수많은 기업을 인수해댄 결과가 벅셔해서웨이다. 한국의 재벌을 탓하지만 이런 문어발은 어디에도 없다.

버핏은 경영권 방어에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다. 차등의결권 주식 덕분이다.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국회가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미국의 경영권 방어제도다. 그의 클래스A 주식은 의결권이 클래스B 주식의 1만배다. 벅셔해서웨이 지분을 99% 긁어모은다 한들 경영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재산 1%만을 남기고 99%는 기부할 수 있다는 버핏의 호기는 여기서 비롯된다.

기부라고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회사 주식을 기부하려고 해도 지분 5%가 넘으면 증여세를 문다. 아무리 대기업을 경영한다 해도 현금 보유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일반 증여와 다를 바 없다. 미국은 주식 기부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99%를 기부하겠다는 버핏도 기부 수단은 벅셔해서웨이 주식이다. 버핏은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과 자기 자식들이 운영하는 재단 네 곳에 기부한다. 자신과 관계없는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일은 거의 없다.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이 남의 재단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버핏은 게이츠 부부와 함께 그곳의 신탁관리인이다. 이름만 게이츠재단이지 자신의 재단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버핏은 상속세를 한 푼 내지 않고서도 기부한 지분을 자신과 자식들의 지배하에 두고 있는 셈이다. 상속을 위한 편법 기부라는 비난이 있는 이유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가산세 포함 65%) 부담에 절절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버핏은 뛰어난 경영인이다. 그러나 그의 노력 못지않게 미국의 기업하기 좋은 제도가 뒷받침돼 가능했던 인물이다. 삼성물산 사태를 계기로 경영권 방어장치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이참에 기업이 기업 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모든 기업 정책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해보자. 대기업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가업승계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에도 희망을 주는 일이다. 꺼져가는 경제에 불씨라도 살리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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